탁구는 일정한 규격의 탁구대에서 작고 가벼운 공을 라켓으로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경기로 좁은 장소에서 적은 인원이라도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라켓 스포츠 인다. 탁구의 역사와 국내 도입과 변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탁구의 역사
탁구는 그 역사나 기원이ㅣ 정확하지 않은데, 중세 이탈리아의 '루식 필라리스'라는 놀이에서 변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15~16세기 경 프랑스 궁전에서 행해진 '라파움(Lapaum)'이란 놀이가 변하여 탁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 명칭도 일정하지 않아서 고시마, 프림프림, 와프와프 등 여러 가지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인도 등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테니스에서 힌트를 얻어 더위를 피하여 실내에서 놀 수 있는 놀이로 변형시켰다는 것이 통설이다. 지금의 셀룰로이드 공은 1898년 영국의 James Gibb이 고안했는데, 이를 취급하던 운동구 상점 함께 상회에서 공을 칠 때 나는 핑퐁 소리(그 당시 사용했던 탁구대와 가죽으로 된 배트에 볼이 닿는 소리를 가지고 모방한 것임)를 따서 핑퐁이라는 상호를 붙였다고 한다. 그 후 명칭이 테이블 테니스(Table Tennis)라고 고쳐지고 전 유럽에 보급되면서, 1900년 무렵에는 전 유럽에 탁구가 널리 보급되었다. 1902년 처음으로 영국에 탁구협회가 생기고, 1926년에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국제 탁구연맹이 발족되어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었다. 1927년 1월에 영국 런던에서 제1회 유럽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
한국의 역사
우리나라에 탁구가 도입된 것은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다만, 국제탁구연맹 편람에서 탁구가 1899년 영국에서 일본으로 보급되었고 1900년대 초 한국/중국/홍콩 등지로 전파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에 따라 탁구 계에서는 도입경로를 두 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인접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문물의 교류와 인적왕래가 잦았던 일본에서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도입되었다는 설이며, 또 하나의 다른 경로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교사들이 종교전파의 수단으로 탁구를 이용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분명치는 않으나, 1924년 경성일일 신문사가 제1회 탁구 경기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급격한 보급이 시작 되었으며 1926년 동 신문사가 주최한 제2회 대회에는 200여 명의 남녀 선수가 참가하는 성황을 보였다. 우리의 손으로 첫 대회를 연 것은 YMCA체육관에서 제1회 조선 탁구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한 것이다. 이후 해방이 되자 1945년 11월 조선 탁구 협회가 발족되고 전국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어 국제 진출의 기틀을 잡았다. 1952년 제1회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 대회에 참가한 한국은 1956년 동경에서 열린 제23회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여자 5위, 남자 14위를 차지한 후 더욱 발전하여 1959년 도르트문트에서의 제25회 세계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준우승의 전과를 올렸다. 이후부터 정상정복의 가능성을 보여 왔던 1973년 4월에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이에리사, 정현숙이 주축이 된 여자 팀이 단체전에서 일본, 중국의 강호를 물리치며 감격의 우승을 차지하여 탁구는 물론 구기 사상 최초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 이후로도 우리나라 탁구는 세계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며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에리사, 정현숙이 은퇴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한동안 스타부재의 공백기를 맞았던 한국탁구는 환상의 콤비 영영자, 현정화의 등장과 유남규의 출현으로 86 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최강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여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 한국탁구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1년은 우리나라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탁구종목이 남북 단일팀을 구성되어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대회에 출전하여 여자단체에서 막강한 중국을 격파하고 우승함으로써 한국탁구가 국위선양의 선두주자로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해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스타들의 전력도 쇠퇴하고 이들을 이을 유망주도 없어 한국탁구는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해방 이전부터 갖가지 풍상을 겪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직 불굴의 정신과 피땀 어린 노력으로 한국탁구의 터전을 일구어 왔던 선배들의 족적을 되돌아보면서 오늘의 탁구인들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가'를 자문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